[기자수첩] 세모녀 사건과 부를 지닌 어린공자들의 이야기

24일 한 제약회사로부터 전송돼온 보도자료가 씁쓸하다.

내용인즉, ‘주총장에 초등학생 주주 등장, 화제’라는 제목으로 초등학생 1학년과 4학년 형제가 2년 전부터 용돈, 세뱃돈 모아 주식 투자해 각각 2236주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날 주총에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참석했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어린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주식에 투자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보도자료를 낸 제약회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했는지. 또 이 어린이들의 부모는 과연 회사가 자료를 배포하는데 동의했는지 묻고 싶다.

이 회사의 주식 2236주를 시세로 환산하면 거의 4000만원에 육박한다. 도대체 세뱃돈과 용돈을 얼마나 주었으면 이 정도의 돈을 모았을까.

한 아이 당 4000만원씩 두 아이에 8000만원을 불과 2년 만에 용돈으로 주었다면 이는 엄연히 증여에 해당돼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할 경우 1년에 1000만원까지만 증여세 면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꾸준히 경제 공부를 시켜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주식투자로 돈을 불리는 경제를 알려 주기 전에 세금을 착실하게 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주총이 어떤 곳인가. 이른바 ‘쩐의 전쟁’이 일어나는 가장 핵심인 장소로 때로는 어른들의 볼썽사나운 모습들이 일어나곤 한다.

이러한 곳에 학교수업까지 제치며,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참석하기에는 너무 일찍 어른들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땀 흘려 일하고, 그 댓가로 얼마만한 금전을 받는지를 알려 주는 것도 훌륭한 경제 공부가 아닐까.

이 자료를 배포한 제약사는 보도자료에서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사의 Wnt표적항암제 개발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고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그래서 약 6년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꾸준히 주식을 사 장기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2년간 용돈을 모아 주식을 삿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버지가 6년 동안 아이들 명의로 주식을 매입했다는 말인가? 초등학교 1학년이면 불과 7~8살이고, 여기서 6년 전이면 도대체 이 아이는 몇 살부터 이 회사주식을 삿다는 말인가.

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제약사는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이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회사의 미래성장 가능성은 충분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주가치 실현은 당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굳이 어린아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요즘 인터넷을 통한 ‘신상털기’는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 이 회사는 버젓이 이들 부자의 실명을 거론(보도자료에 가명이란 말이 없으니)하고, 사진까지 배포하는 친절(?)을 베풀어 많은 언론들이 여과 없이 보도하고 있다.

이 제약사는 보도자료를 배포함으로써 한 가족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지.

가진 돈 몇 십만원을 남겨놓고 세상을 등진 ‘세모녀’ 사건이 일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수십배의 부를 지니고 있는 어린 공자들의 이야기가 어른들에 의해 이용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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