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의료법 위반 방조 행위’로 항소심 무죄 뒤집고 파기환송

‘사후 처방전’으로 약사가 환자에게 약을 조제해 주면 어떻게 될까.

약사가 처방전 없이 약을 요구하는 환자에게 약을 지어주고 나중에 의사에게 일괄적으로 대신 처방전을 받았다면 ‘의료법 위반 방조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약사의 이 같은 행위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한 의사의 의료법 위반 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형사3부는 의료법 위반 방조 혐의로 기소된 약사 임모(46)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 환송한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씨는 자신의 약국을 찾은 환자들이 병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종전 처방대로 약을 조제해 줄 것을 부탁하면 처방전 없이 약을 지어준 뒤 나중에 인근 병원 의사인 장모씨에게 부탁해 사후에 처방전을 발급 받았다"며 "이 과정에서 임씨는 환자들에게 본인 부담금을 받아 장씨에게 건네고 자신은 약을 조제·판매해 수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판결문은 계속해서 "이 같은 거래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점 등을 감안할 때 임씨의 행위는 의료법 처벌 대상인 장씨의 처방전 작성행위에 가담해 이를 용이하게 한 것으로 평가함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사건의 발단은 충주시 문화동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임씨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자신의 약국을 찾은 단골손님들에게 처방전 없이 약을 지어준 데서 비롯됐다. 임씨는 환자에게 의료보험 본인부담금을 받은 뒤 근처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장씨에게 부탁해 사후에 처방전을 일괄적으로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1심은 임씨의 혐의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임씨는 처방전 없이 약을 처방 받으려는 환자들을 도와준 것 뿐"이라며 "환자들을 처벌할 수 없는 이상 임씨 역시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깨뜨린 것은 형법상 법리인 대향범(對向犯) 논리를 보다 현실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향범이란 2인 이상의 행위자가 서로 대립하는 방향으로 공동 작용해 성립되는 범죄를 말한다. 뇌물을 받는 수뢰(收賂)와 주는 증뢰(贈賂)가 대표적인 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준 사람이 있어야 하듯 대향자는 범죄 성립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재판부는 "원심은 임씨의 행위가 의사 장씨의 처방전 교부행위에 대한 대향범(對向犯) 관계에 있는 환자들의 행위에 가공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의료법상 이와 같은 경우에 환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환자들을 처벌할 수 없는 이상 임씨 역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의료법 위반 행위의 방조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로 미뤄 비록 환자의 치료 편의상 선의의 목적으로 처방전 없이 약을 처방하는 행위가 비록 사후 처방전을 받아서 챙겨놓을 지라도 이는 의료법 위반 행위임을 명심하고 이에 대한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우(愚)를 범해서는 아니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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