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단순한 ‘오해’냐, 아니면 은밀한 ‘추행’이냐?

변비증상을 호소하는 여중생을 진료 침대에 눕혀 팬티 속으로 깊숙이 손을 넣어 진료했다가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사건번호 : 2014노767-1심 "성추행" 유죄, 2심 "환자의 오해" 무죄 선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보고서가 최근 나오면서 ‘진료냐? 추행이냐?’에 대한 논의가 또 다시 공론의 장으로 떠올랐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기관을 이용한 성인(19~59세) 여성 1000명 중 118명이 성적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10%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환자들은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유방을 만졌다.” “한의원에서 수기치료라는 것을 받았는데 한의사가 속옷을 벗기고 손을 넣었다.” “가벼운 감기로 병원을 방문했는데 청진기 진찰 중 의사가 옷 안 브래지어를 들고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댔다. 사전 설명이나 동의는 전혀 없었다.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등 자신이 직접 겪은 사실들을 토로했다.

진찰 또는 검사를 위해 옷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과다한 신체 노출과 진료실의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해 느끼는 불쾌감, 사전 설명 없이 진료과정에서 신체 부위 접촉 등으로 인해 빚어지는 성희롱, 통상적인 진료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성추행 수위 등 다양한 사례가 이번 조사를 통해 보고됐다.

의료인에게 자신의 치료를 위해 몸을 맡겨야 하는 환자의 입장에서 진료 과정 중 의사의 발언이나 신체적 접촉으로 성적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껴도 항의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보고된 사례들을 보면 환자들은 대부분 의료인들의 행위에 대해 성적 수치심을 비록 느낀다 해도 이를 치료과정에서의 불가피한 신체적 접촉으로 여기고 그냥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의료계와 사회 한켠에서는 의료인과 환자가 공히 납득할 수 있는 성추행 예방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주장이 무게를 실리고 있다.

이와 함께 진료실이나 검사실에서 여성이나 미성년 환자, 정신지체 환자 등 자기방어능력에 한계가 있는 환자를 진료할 때 보호자를 동석케 함으로써 혹시 야기될 수도 있는 의료인의 성추행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환자를 안심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어찌됐든 환자의 신체에 대해 의료행위가 전개되면서 신체적 접촉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진료.치료행위와 성추행 사이의 경계는 의료인과 환자 입장에서 서로 상이할 수 있으며, 경계 또한 모호하다 하겠다.

공론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차제에 의료단체와 사회단체 등이 서로 만나 이에 대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저작권자 © 닥터더블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