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병(疫病)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물러나고 있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진 않았지만 옷자락을 뒤로 날린 채로 저 멀리 사라지고 있다.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가 기침이나 재채기만 해도 흠칫 놀라서 바라보게 한 그 불안과 공포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메르스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온 국민을 떨게 한 지 만 69일째가 되는 28일 정부는 메르스 사태가 사실상 끝났음을 선언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메르스 대응 범정부 대책회의를 통해 "엄격한 국제기준에 따른 종식 선언을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국민들은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게 의료계와 정부의 판단"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 여러분은 조금의 불안감도 없이 경제활동, 문화·여가활동, 학교생활 등 모든 일상생활을 정상화해주기 바란다"면서 "정부는 국민의 일상생활 정상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상황이 완전히 마무리될 때까지 필요한 대응조치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20일부터 시작되어 70여일 다 되도록 우리 모두가 정체 미확인의 병마(病魔) 메르스와의 사투를 벌여왔고 그 과정에서 감염 확산이란 사회적 공포와 일상생활의 불편까지 감수해야 하는 실로 어려운 지경을 다수가 겪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 의해 내가 생명을 위협받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양날의 질곡 속에서 공포와 불안감은 배가 됐다. 그런데다 외출도 자유로이 할 수 없었고, 중요한 약속도 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속수무책의 무력감에 사로잡혀만 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메르스 사태로 인해 국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 격리 조치되었다. 애쓴 노력에도 불구하고 186명의 확진환자가 발생하였으며, 36명의 고귀한 생명이 스러지는 등 희생과 피해가 컸다.

메르스는 이별을 고하고 있지만, 가면서 많은 숙제와 교훈을 남겼다. 이번 사태는 감염관리에서 의료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성찰의 기회를 줬다.

우리만의 독특한 간병·병문안 문화 및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는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은 의료기관의 노력만으로는 개선될 수 없으며 국민 모두의 협조와 정부의 지원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것 등등.

실패는 거울로 비춰 냉정하게 살피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또 다시 반복된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역병 대처의 패착(敗着)으로 평가되고 있는 만큼 메르스 종식 선언에 즈음하여 지난 70일을 냉정하게 살피고 징전비후(懲前毖後)의 맹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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