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대토론회’ 개최...노인이 다수를 이룬 청중들, 참석 의원들에게 "반드시 통과시키라!"

제대로 죽는 법, 이른바 ‘웰다잉(well-dying)’ 성찰이 확산되고 있다. 오늘(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원혜영 의원 등 현역 국회의원들과 300여명의 방청객이 참석한 가운데 윤평중 교수(한신대 철학과‧호스피스 완화의료국민본부 공동대표), 윤영호 교수(서울대 의대) 등이 토론자로 나선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대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발표를 맡은 윤영호 교수는 “죽음을 둘러싼 한국인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며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로 ▲바람집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 ▲삶의 바람집한 마무리를 위한 의료 시스템의 부재 ▲임종환자의 간병 부담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의 부재 ▲삶의 바람직한 마무리를 위한 문화 부재 등을 꼽았다. 특히 임종을 앞둔 말기환자와 가족을 위한 정부의 체계적 관리정책과 철학이 부재하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지적에 정통령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정부도 이번 법안에 적극 지지를 보내며, 법안 통과를 전력을 다하겠다고”고 지지의사를 표했다.

토론자로 나선 윤희숙 KDI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은 “이대로의 사회시스템에서는 죽는 게 두렵다”며 사적인 견해를 밝힌 후, “재정적 논의를 다루기 이전에 철학적‧윤리적 성찰과 합의가  무르익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재우 신부(가톨릭 생명윤리연구소장)는 “고령자는 ‘돌봄’을 받는 게 당연한데, 우리 사회는 ‘돌봄’을 ‘짐’으로 인식하는 듯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이번 법안 추진은 우리 사회에 ‘돌봄’ 문화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말기환자의 인권뿐 아니라 재정 절감에도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윤영호 교수는 호스피스의 본격적 시행을 가정하여,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추산한 결과, 시행 전 3,000여억원인 진료비가 시행 후 약 7,600억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기간 호스피스를 제외한 진료비는 약 3,000억원 가량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박명희 ‘소비자와 함께’ 상임대표는 “환자 가족들은 사실 병원비가 가장 걱정이 된다. 국가가 간병시스템을 정비하여 의료비를 절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걸 더 떠나 죽음을 앞둔 인간의 존엄성이야말로 핵심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윤상 대한의학회 회장은 “키워드는 존엄성과 인권이다. 호스피스에는 이권이 걸려있지 않고 정략과도 무관하며, 큰 예산과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 회장은 또 “호스피스는 우리 사회의 격(格)을 나타내는 일이다. 19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번 회기 내에 법제화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윤평중 교수는 “철학에서 ‘잘 산다’는 의미는 삶과 죽음 모두를 아우른다”며 웰다잉은 곧 웰빙의 연장선이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삶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죽음을 준비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다.

모두 예외 없이 반드시 맞이해야 하는 죽음, 그 죽음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호스피스 관련 법안은 마치 의료진이 손 놓은 말기환자처럼 방치된 지 오래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번 19대 국회, 꺼져가는 회기 내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남길 수 있을까.

당초 정오에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을 토론회는 방청객들의 발언권 신청으로 20분 이상 연장되기도 했다. 좌장의 허락도 채 받지 않은 채 불쑥 일어나 큰소리로 나름의 지론을 펼친 이들 중에는 연로한 어르신, 일선 의사, 호스피스 관련 의료인, 재야 연구자 등이 있었다.

누구는 간명하고 정연하게 말했고, 누구는 흥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방청객 중 자리를 뜨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신 그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큰 박수로써 동의를 표시했다.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문화적 억압 아래에서 실은 죽음이야말로 가장 절절한 실존적 문제임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우리 모두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우리 모두 결국 죽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신종추원 민덕귀후(愼終追遠民德歸厚; ‘부모의 죽음에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정성껏 모시면 사람들의 덕이 두터워진다’)"라는 『논어』의 가르침은 호스피스가 비단 죽음을 앞둔 자와 그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일러준다. 확실히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삶과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며, 죽음을 제대로 수용하는 성숙함은 참된 삶의 가치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마무리를 신중히 하라는 '신종추원'의 가르침을,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19대 국회가 실천할 수 있을지 의원들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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