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에서 병마와 싸우는 이들에게 도움 전하고 싶어

 
지난해 5월 20일 메르스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확진 판정을 받고 난 그 해 대한민국의 여름은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인 ‘잿빛’으로 물들었다.

2015년 6월 8일 늦은 밤, 을지대학교병원에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환자가 머물렀던 중환자실의 환자와 의료진들은 병원에 전원 ‘코호트 격리’ 조치됐다. 갓 입사한 새내기 간호사부터 두 살, 세 살 연년생 아이들을 둔 경력 간호사도, 웨딩촬영으로 한창 바쁘던 예비 신부도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중환자실 파트장 홍민정 간호사에게 땀과 눈물로 기억되던 이 14일간의 코호트 격리 기간. 이제는 여기에 ‘감사’가 더해지게 됐다.

홍 간호사는 환자 및 의료진의 추가감염 없이 이 병원이 국민안심병원으로 선정되는 데 기여한 공적으로 지난 4월 20일 ‘제10회 한사랑 농촌 문화재단’ 사회공익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

홍 간호사는 이 때 받은 상금 일천만원 중 팔백여만원을 사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환자들로부터 ‘웃음전도사 홍 반장’으로 불리는 홍민정 간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감사함’을 시작으로 ‘사회나눔’ 실천
“벌써 1년 전 이야기네요. 믿기실지 모르지만 요즘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울컥해요.”

홍 간호사는 ‘메르스’환자 발생 당시 코호트 격리 조치로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된 환자들을 위해 병원에 무선전화기를 요청해 중환자실에 비치했다. 그리고 환자와 가족들을 연결해 주는 메신저 역할을 맡았다.

그 중 한 통의 전화가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던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바로 숨을 거두기 전인 60대 환자에게 가족들이 수화기 너머로 전한 ‘임종편지’ 건이다.

메르스로 아내이자 엄마인 환자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게 된 남편과 자식 등 가족들이 전화를 통해 자신들이 쓴 편지를 전해달라며 홍 간호사 등에게 읽어 주었고 이를 받아 적은 간호사들이 임종 직전 환자에게 읽어드린 이 ‘편지임종’은 당시 큰 화제로 떠올랐다.

“편지 속 ‘고생하다 이제 살만한데...‘, ’다음 생에도 엄마와 딸로 만나요‘ 등 한 구절, 한 구절이 각자의 가족 이야기 같아서 모두 펑펑 울었어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믿고 기다려 주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러웠지요.”

14일 동안 숨쉬기조차 힘든 답답한 방호복을 입고 적은 인원이 계속해서 환자를 교대로 돌보느라 구토와 식욕부진, 산소부족 등으로 쓰러지는 간호사마저 발생했지만 홍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은 사명감으로 굳은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에 추가감염자의 발생 없이 격리는 해제했고, 을지대학교병원은 국민안심병원으로도 선정됐다.

홍 간호사는 “격리된 중환자실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자원해 지원사격을 나서준 동료 간호사들을 비롯해 처음 도입된 감염관리 시스템을 한마음, 한뜻으로 따라준 전 직원 덕분”이라며, “원내 환자분들은 물론, 생각지도 못한 신문 배달하시는 분이 수첩에 적어주신 응원 쪽지, 어린 학생들의 손편지, 환자 보호자의 작은 편지와 전화 등 지역주민들의 격려와 온정의 손길이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번 상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렇듯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메르스 때 일로 받은 상금이니 메르스처럼 예기치 못한 감염질환으로 고생하시는 환자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관련 단체를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복지단체에 기부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케어할 수 있는 곳에 전달하고 싶어서 마침 병원에 계신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사랑의 열매’를 추천해 주시더군요.”

의료인으로서 일반인보다는 환자에게 더 손 내밀고 싶다는 홍 간호사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재단과 함께 매년 크고 작은 사회 나눔 행사에 참여하며 봉사할 계획임을 밝혔다.

메르스 이후, 감염관리에 대한 시민의식 변화
메르스 이후 중환자실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자 홍 간호사는 뿌듯해 하며 답했다.

“면회 오시는 분들의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셨어요. 중환자실은 특성상 면회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데 면회시간 전부터 문을 두드리며 면회를 요구하거나 의료진이 안내하는 면회수칙을 어기는 일이 다반사였죠. 하지만 요즘은 이런 일이 많이 줄었고 감염수칙 안내에 따라 손세척과 기침예절도 지켜주시는 편이세요.”

홍 간호사는 아직 백퍼센트 만족할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조금씩 변화하는 시민의식의 모습에 큰 기대를 비쳤다.

“의료기관의 노력과 시민의식 변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메르스, 또는 어떤 감염질환이 발생해도 저희는 또 한번 환자와 그 가족들을 지켜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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