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 함께한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내 속에서 나온 내 자식을 몰라보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질기게 같이 살아온 영감 또는 할멈을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사람이면서 사람되지 못하도록 하는 병-‘치매’가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인 10명 중 넷은 암이나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보다 치매에 걸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노령층에서의 건강정보이용 현황 조사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도시·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60세 이상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조사는 지난 2014년 11~12월 일대일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 결과 '어떤 질환이 가장 두려우십니까?'라는 질문에 400명 가운데 44.3%를 차지하는 177명의 노인이 '치매'라고 답했다. 그 뒤를 이어서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혈관 질환 122명(30.5%), 암 96명(24.0%), 기타 5명(1.3%)으로 조사됐다.

성별로 나눠보면 남성보다 여성이 치매에 대한 우려가 더 컸다. 치매에 걸리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답한 177명 중 남성은 71명이었지만 여성은 106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치매환자가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작년 기준 전체 치매환자 45만9068명 중 여성은 32만8644명으로 71.58%를 차지했다.

아울러 농촌보다 도시 지역 거주자의 치매 두려움이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다. 177명 중 도시 지역 거주자는 109명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도시의 경우 삶의 공동체가 붕괴돼 요양시설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 치매는 당사자인 노인 혼자만의 병이 아니다. 가정에 치매환자가 있으면 가정 전체 구성원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는 항상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며, 설사 전문요양원에 간다한들 자아를 잃어가는 치매 노부모,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 배우자는 상대방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매에 대해 한 전문가는 "가족과 사회 시스템이 훨씬 중요한 질환인 만큼 사회적 인식을 높여 불필요한 불안감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서 "치매는 조기에 진료를 받을수록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며 "건강정보가 필요할 때는 의사에게 상담하고 진료 받아 조기 진단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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