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지출 가운데 건강보험료 납부는 거의 최우선이다. 건보료를 몇 개월 연체하다 보면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다. 건보료는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존을 영위하기 위한 불가항력의 지출이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건강보험료는 챙기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건강보험 재정 상 누적흑자로 인해 쌓인 적립금이 20조 원 선을 돌파했다. 그렇게 국민들에게서 그러모아 건보급여로 지출하고 남은 돈이 20조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 결과 보험료 과다 징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상적인 보험은 지출과 수입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잠재적 위험에 처한 사람 끼리 모여서 돈을 갹출하고 실제 위험이 닥친 사람에게 그 돈(보험금)을 모아서 준다. 그런데 보험 계주 호주머니에 돈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모양새다.

12일 국회보건복지위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건강보험 재정통계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8월말 현재까지 건강보험 총수입은 37조7387억원, 총지출은 34조5421억원으로 3조1966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기 의원실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 2011년 1조6000억원의 누적 수지로 재정 흑자로 돌아섰으며, 누적흑자는 2012년 4조6000억원, 2013년 8조2000억원, 2014년 12조8000억원, 2015년 16조9000억원 등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8월 것까지 합치면 누적 수지 흑자는 20조1766억원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이렇게 건보재정 흑자폭이 크게 확대된 데에는 우선 지출 측면에서는 의학기술발전과 건강검진 확산 등으로 질환을 조기 발견해 치료하고 암 발생률이 감소한 데다 경기침체로 살림이 팍팍해지면서 국민이 아파도 병원 치료를 꺼리면서 진료비 지출증가 속도가 둔화해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수입 측면에서는 건강보험이 당해연도 지출을 예상하고 수입계획을 세우는 ‘단기보험’이란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건강보험 당국이 해마다 적정 이상으로 건강보험료를 많이 부과, 징수했기 때문에 누적흑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연속 흑자를 보이며 남아도는데도 보험료는 매년 올랐다. 지속적 흑자재정 운영에도 불구하고 국민으로부터 보험료를 과다하게 징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일게 됐다.

정부가 남아도는 흑자재정을 활용해 건강보험의 보장혜택을 강화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흑자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보료는 거의 매년 오르고 재정은 흑자인데도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년 65.0%에서 2010년 63.6%, 2011년 63.0%, 2012년 62.5%, 2013년 62.0% 등으로 해마다 떨어졌다. 그러다가 4대 중증질환 보장강화, 3대 비급여 개선 등으로 2014년 63.2%로 전년 대비 1.2%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건보재정이 적정 수준 흑자를 유지하는 것이야 장기적 안목의 건전성 차원에서 시비 소지가 덜 하겠으나 보험 논리 상 흑자 규모가 너무 커지는 것은 아무리 미래 대비 차원이라는 여백을 고려한다 해도 정상이라고 보긴 어려울 수도 있다. 그 돈이 모두 빠듯한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으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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