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었던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의 검은 옷차림은 최근 폴란드에서 ‘낙태금지법’ 폐지를 이끈 여성들의 검은 옷 시위를 모방한 것이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다수였으나 젊은 남성과 중년여성들도 적잖았다.

이들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한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재 최대 1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령·규칙을 입법 예고한 데 대해 반발해서 모였다.

이들의 구호는 ‘낙태죄 폐지’였다. 시위대가 든 팻말에는 ‘내 자궁은 나의 것, 낙태죄를 폐지하라’ ‘내 자궁에서 손 떼, 국가는 나대지 마라’ 등의 선언적 글귀가 들어있었다. 참가자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안전한 낙태가 여성의 기본권임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에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임신중절(낙태)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최대 12개월 의사자격 정지 처분을 내리는 의료법 시행령 행정처분규칙의 개정안에 반발하고 나섰다.

산부인과의사회 김동석 회장은 “오는 11월 2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 정부안대로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전문평가제 시범사업이 시작될 경우, 모든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수술 정면 중단을 선언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모자보건법에는 근친상간, 강간, 부모의 유전자 이상 등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임신중절수술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정부의 규칙개정안은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모자보건법을 위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를 포함시켰다.

이처럼 불법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의사면허를 최대 1년까지 정지할 수 있게 한 복지부의 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시작된 ‘낙태 논란’이 의료계를 넘어 사회 전체로 번져 파문을 던지고 있다.

‘여성이 낙태를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낙태권에 대한 찬성 여부는 종교 교리, 법률, 양심, 기본권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실로 역사가 오래된 해묵은 논쟁거리지만 한국 사회에선 아직까지는 본격적인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온 적이 없는 주제임에 분명하다.

이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에는 근친상간, 강간 등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낙태를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한 해 낙태수술이 17만 건으로 추정될 정도로 조항 자체가 이미 실효성을 상실한 상태다.

15일 검은 옷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낙태죄 반대 주장에서 “낙태에 관한 법률이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인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고 하면서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는 여성이 임신과 재생산의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에서는 낙태수술 처벌 수위가 올라가면 낙태가 더욱 음성화돼 여성 건강권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낙태 문제는 생명과 관련된 문제여서 태아의 생명권, 태어난 아이들의 권리와 함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의 인권 등이 서로 얽혀 있어 가닥을 잡기 쉬운 문제가 결코 아님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복지부의 입법예고로 촉발된 이번 낙태 논쟁이 보다 너른 공론의 광장으로 나와 보편적이고, 보다 현명한 법률 입법을 성사시키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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