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일상은 참으로 삭막하고 건조하다. 아침에 일어나 버스, 지하철, 혹은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면 종일 사무실에 갇혀 바쁜 일상에 매달리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주변은 빌딩 숲으로 변해간다.

풀잎 하나, 꽃 한송이, 나무 한그루, 채소 한포기 등 녹색 식물들이 커나가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 마음이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녹색이 사막화돼버린 빌딩 숲에 갇힌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에서의 생활을 꿈꾼다.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이런 자연 회귀 본능을 '녹색 갈증(biophilia)'으로 표현했다.

이와 관련해 우울증과 자살 등 원인에 거주지역 주변의 녹지공간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민경복 서울의대 예방의학과 교수팀이 지역사회건강조사에 참여한 20세 이상 성인 23만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인당 녹지공간이 적을수록 우울증상, 자살 생각, 자살 시도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전국 200개 시·군·구 단위 행정구역별 1인당 녹지공간을 많고 적음에 따라 4개 그룹(33.31㎡ 이상, 22.41~33.3㎡, 14.90~22.4㎡, 14.9㎡ 미만)으로 나눴다.

이번 분석 결과 1인당 녹지가 가장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은 녹지가 가장 많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우울 증상을 경험할 위험이 약 1.27배 높았다.

같은 조건에서 자살 생각을 경험할 위험은 1.16배였고, 자살을 시도할 확률은 1.27배 높았다. 특히 우울 증상은 신체활동이 부족하고 녹지공간이 적을 경우 그 위험도가 1.29배까지 상승했다.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연구팀은 우울증이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심리학적인 조건에 좌우되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신체활동과 녹지 공간 등 환경도 큰 영향을 준다는 증거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베란다에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담아 고추모종이라도 심어서 가꾸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멘탈(mental)은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소소하지만 녹색이 커나가는 것을 보고, 또 가꾸고 하면서 식물과 대화를 하면 녹색갈증이 해소되고 정신건강에도 좋을 듯하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61만3천명으로 전체 국민의 1.5%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자살률은 지난 2003년 이후로 줄곧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지키고 있다.

녹색갈증으로 인해 생길지도 모를 우울증, 자살 생각 등을 멀리 떨쳐놓기 위해 빌딩 숲과 아스팔트 길, 콘크리트 담벼락을 벗어날 수 있도록 오늘이라도 조그마한 ‘반려식물’ 가꾸기에 나서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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