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체근육통 85.8%∙하체근육통 63.8%∙요통 50%…근골격계 질환 달고 사는 ‘택배기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에는 애환이 가득하다. 바로 ‘감정노동자’의 이야기다. 감정노동이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말하며 이러한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을 ‘감정노동자’라고 부른다.

최근 ‘다산 신도시 택배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주민과 택배업체의 갈등 사이에서 택배기사들은 난처하기만 하다. 하루 종일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전화상담원과 마트 계산원의 일상도 고단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은 때로는 화를 삼키며 병을 키우고 때로는 과도한 업무로 병을 얻는다.

이러한 이유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지난 3월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들을 완벽하게 보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장에서는 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고, 때로는 감정노동자 스스로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노동자들이 어떤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안산자생한방병원 박종훈 병원장의 도움말로 감정노동자들이 자주 겪는 질환과 예방법, 치료법 등을 알아보자.

■ 수화기로 넘어 오는 스트레스에 전화상담원 ‘화병’ 비상

전화상담원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하루에도 수백통에 달하는 문의전화를 받는다. 그 중에서도 악성민원전화로 고통을 받는 전화상담원이 많다. 하지만 직업 특성상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드물다.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쌓아두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 켠이 답답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대표적인 ‘화병’의 증상이다.

 
화병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민간에서 쓰이는 정신건강과 관련된 병명으로 ‘울화병(鬱火病)’의 준말이다. 즉 화병은 ‘화(火)’의 기운을 가진 분노가 쌓여서 생긴 병이라고 할 수 있다. 화병은 정서적 스트레스를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고 억제하면서 발생한다. 화병의 증상에는 불안, 초조, 가슴 두근거림, 우울, 불면 등이 있다. 신체적 증상으로는 두통, 입 마름, 피로, 흉통 등 다양하다. 이러한 증상들은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질환에서 흔히 관찰되는 증상이기도 하다. 화병의 진단은 발병 이전의 일상 생활이나 스트레스 원인을 조사하고 이러한 요인이 심리에 미친 영향을 평가한다. 또 이로 인해 현재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을 파악한다.

화병은 여성에게 주로 나타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0~2014년) 불안장애 등 화병으로 진료 받은 환자 99만3417명 중 여성 환자가 65만여 명으로 남성 환자 수(34만여명)보다 2배 많다. 그 중 50대 여성 환자 수는 14만 명으로 전체 화병 환자 7명 중 1명꼴이다. 전화상담원의 대부분이 여성인 점을 감안한다면 전화상담원은 늘 화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병을 예방하고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다. 보통 스트레스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방치하면 화병 증상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소에 제대로 스트레스 관리를 해줘야 한다. 가벼운 운동이나 명상, 여가 활동이 화병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

■ 택배기사, 감정노동에 장시간 근로…일상이 된 근골격계 질환

지난 2016년 택배연대노조가 택배기사 3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택배기사의 58%가 본인의 잘못과 무관하게 고객으로부터 욕설을 듣는다고 답했다.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인 만큼 택배기사도 감정노동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택배기사는 과도한 업무에도 시달린다. 택배기사의 주당 노동시간은 약 77시간으로 주당 법정 근로시간 68시간을 크게 상회한다. 근로 시간이 긴 만큼 부상의 위험도 잦다. 일반적으로 택배기사는 하루 평균 300개 내외의 물량을 취급한다.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량으로 택배기사의 몸은 성할 날이 없다. 택배연대노조에 따르면 택배기사의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을 겪은 경험이 있다. 택배기사의 질환을 살펴보면 상체근육통 85.8%, 하체근육통 63.8%, 요통 50.0%, 위장병 26.0% 순이었다.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 부상을 피하고 싶다면 자신의 자세를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무릎을 편 상태에서 허리만 구부려 물건을 들면 급성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가 발병할 수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 순간적으로 척추에 강한 힘이 실리면 디스크의 외벽인 섬유륜이 손상을 입고, 균열된 섬유륜 사이로 내부의 수핵이 밖으로 흘러나와 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거운 물건을 들 때에는 무릎을 굽혀 반쯤 앉은 상태에서 물건을 몸 쪽으로 끌어당겨 들어 올리거나 물건을 몸에 바짝 붙인 다음 들어 올려야 한다.

안산자생한방병원 박종훈 병원장은 “무거운 짐도 수시로 나르는 택배기사의 경우 바쁘더라도 척추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로 물건을 나를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급성 허리디스크로 일상 생활이 어려운 경우 응급침술인 동작침법으로 통증을 잡고 추나요법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마트 계산원의 34% 족저근막염 호소…스트레칭으로 증상 완화 가능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일하는 마트 계산원의 발은 늘 지쳐있다. 일하는 내내 발바닥이 체중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 족저근막염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2016년 전국 대형마트 근로자 1238명을 대상으로 실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7명(70.8%)은 요통이나 어깨 결림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족저근막염을 호소하는 사람도 312명(34.4%)에 달했다.

족저근막염이란 발바닥 근육을 감싸고 있는 막에 생긴 염증을 말한다. 발뒤꿈치뼈의 전내측과 다섯 발가락뼈를 이어 주는 족저근막은 발의 아치모양을 유지하고 발바닥이 받는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족저근막에 반복적으로 미세한 손상이 일어나면서 염증이 발생한 것을 ‘족저근막염’이라고 한다.

증상으로는 발뒤꿈치 내측의 통증과 발의 안 쪽의 통증이 있다. 특징적인 점은 아침에 처음 몇 걸음을 걸을 때 수면 중에 수축되어 있던 족저근막이 펴지면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오랜 시간 걷거나 서 있어도 통증이 증가되는 경향이 있다.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2배 정도 더 많이 발생한다.

 
족저근막염은 스트레칭과 족욕, 마사지 등 보존적 치료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마트 계산원의 경우 휴식시간을 이용해 스트레칭을 실시하면 족저근막염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다. 우선 팔 길이만큼 벽에서 떨어져 서서 한 쪽 발을 반대쪽 다리에서 50cm 정도 뒤로 옮긴 후 손바닥으로 벽을 짚은 후 발을 바닥에 붙인 채 몸을 천천히 앞으로 기울이되 뒤쪽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도록 한다. 이 자세로 10초간 유지했다 풀어주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한다. 다리를 바꿔 다시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된다.

안산자생한방병원 박종훈 병원장은 “감정노동자의 경우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는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스스로 스트레스 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장에서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한 업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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