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업그레이드 시킬 실천적 리더십이 중요하죠’

정수영 교수는 한국여자의사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열린 국제여자의사회(MWIA)에 다녀왔다.
 박경아 교수가 차기회장에 도전장을 낸 상태여서 국내 의료계의 관심도 컸으므로 이례적(?)으로 그 먼 곳까지 20명이나 되는 대표단이 움직인 터였다.
 
하지만 선거는 본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매듭이 됐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열리는 대회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유럽이나 남미 국가들이 많이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를 인접 아프리카 국가들이 메우면서 판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후보별 득표수를 공개하지 않는 원칙에도 사람들은 박빙의 승부를 눈치로 알아챘다. 한국이 지금처럼 7표가 아니라, 회비 분담률을 좀 더 늘여 투표권을 15표 정도만 확보했어도 충분히 박 교수의 손을 들어 올릴 수 있었을 것이란다.
하지만 박경아 후보가 먼저 맘껏 상대 후보인 닥터 헤세의 당선을 축하해줬다. 그리곤 한국 대표단은 거짓말처럼 패배의 불유쾌한 기억을 씻어 버리고 행사 그 자체에 몰입해 들어갔다.
 
◆ '단학 시범' 현지서 단연 인기
 
정수영 교수의 활동은 이런 와중에 더욱 빛이 났다. 단순히 참가에 그친 게 아니라 그는 주최 측이 정한 테마에 맞춰 몇 가지 발표에 나섰다. 그리고 행사에 참가한 각국의 여자의사들로부터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한국여자의사회와 정 교수가 이번 행사에를 위해 준비한 것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50주년을 맞는 한국여자의사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기 위한 포스터였고, 다른 하나는 ‘Health in Multicultural World’에서 최아란 원장과 함께 단학을 선보인 것. 그리고 메인 테마인 ‘Leadership for Medical women; How to advanced your carrier’에서의 발표였다.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정 교수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깨끗이 씻었다. 넉넉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가 접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무척 활발하고 낙천적이었다. 최 원장과 단학 시범을 보일 때 그네들은 즉석에서 몸을 일으켜 무대 위의 두 사람의 동작을 즐겁게 따라 했다. 나중엔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유럽의 참가자들까지 단학을 흉내 내는 통에 행사장은 순식간에 즐거운 수련장이 되고 말았다.

시범이 끝나자 이번엔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어떻게 하느냐’ ‘한 번 더 보여줄 수 없나’는 것이었는데, 옆방에서 다른 강연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자기들만 못 보았으니 꼭 다시 해야 한다고 우겨댔고, 급기야는 대회본부에서 본회의장에서 한 번 더 시연을 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해왔다.
정말이다. 그네들은 상황을 즐겁게 만드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그 넉넉한 심성과 웃음이 퍼뜨리는 바이러스가 닿는 곳마다 어느 틈에 흥겨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그래도 아프리칸데 잠자고 먹고 하는 일이 불편하진 않았나요?”

“가나는 아프리카 54개국 가운데 중상위권 국가에요. 그런데도 대회를 치른 호텔은 아주 시설이 훌륭했어요. 교육제도도 잘 돼 있다고 들었는데, 특히 정부가 세계적인 지도자를 배출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지원도 하고 그러나 봐요. 대회 기간 동안 단전 단수를 막기 위해 정부기관에서 호텔에 상주를 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죠. 어쨌든 불편은 못 느꼈어요.”

“국제 행사에 자주 나다니시는 편인가요? 여자의사들의 국제 활동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죠?”

“국가 간의 관계보다는 민간교류를 통한 세계화가 가장 바람직한 세계화라고 봐요. 이런 의미에서 후배들에게 세계화의 교두보를 물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하지 않으면 후배 중 누군가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요. 박경아 교수님이 당선이 됐더라면 더 좋았을 걸 싶지만, 그건 꼭 지금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고 봐요. 이번 대회는 저개발 국가의 여자의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 정신과 마음과 신체의 밸런스가 중요
 
“리더십 발표도 현지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리더십 자체를 설명하기보다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적인 문제를 짚어내고 싶었어요. 설명하자면, 직장에서의 성공만을 보지 말고 직장과 가정 그리고 자아성취를 똑같은 가치의 덕목으로 놓고, 밸런스를 맞춰 토탈 점수를 높게 받아내자는 전략을 말하는 거죠.”

“말 그대로 실천전략이라도 있나요?”

“그렇게 되기 위한 조건은 있어요. 우선 직장에선 자기분야에서 핵심적인 전문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주변과는 과학적 네트웍을 유지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며, 늘 주변에 포지티브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집에서는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하는데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고, 내가 해야 할 일과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자아성취를 위해선 어떤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해야 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매니저 할 수 있는 방법도 가지고 있어야 하죠.”

정 교수는 리더의 조건으로 ▲열정과 솔선수범 ▲미래를 보는 비전제시 능력 ▲현황파악 능력 및 해결 능력 ▲조직력과 인사배치능력 ▲따뜻한 인간미를 꼽았다. 또 ‘늘 감사하는 마음이 일생의 무기’라고도 했다.

정수영 교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학교에서는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과 함께 하는 일에서 특히 보람을 느낀다. 그들이 그 막막한 두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가꿔가는 모습에서 그는 희망을 본다.

인터뷰는 한시간 반 정도 진행됐다.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도중 몇몇 놓인 부분도 있고 의도적으로 빼낸 부분도 있다. 정 교수 자신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가족 얘기까지 털어 놓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마감 전 전화로 개인적인 부분은 가급적 글에서 제해줄 것을 당부해 오기도 했다.

후배 여자의사들에게도 인생을 토탈 개념으로 보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해진 코스대로만 따라가면 통과의례처럼 금방 어려움을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졌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권고했다.
저작권자 © 닥터더블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