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오지에서 세균감염·내성 진단하는 수동 기구 발명

▲ 피젯 스피너와 진단용 스피너
일반 피젯 스피너 장난감(왼쪽)과 진단용 스피너. 한 손으로 중앙 부위를 잡고 다른 손으로 스피너의 날개를 회전시켜 작동시킨다.
▲ 기존의 세균 검출 과정(위)과 진단용 스피너(아래)
세균 감염 의심 환자로부터 세균검출을 위해서는 우선 지역 의료소 및 대학병원에서 임의의 항생제를 처방하고, 세균 샘플을 수집 및 중앙연구소로 배송한 뒤, 중앙 연구소에서 분석해 그 결과가 의사에게 보고된다. 이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7일이 걸리는 과정이며, 환자 증상에 따른 임의의 항생제가 투여된다.
진단용 스피너는 1시간 내에 단순한 작동으로 세균을 정확하게 검출하므로 항생제 오용을 막을 수 있다.
▲ 진단용 스피너를 이용한 세균 검사 결과
(a-c) 환자 샘플로부터 중앙연구소에서 세균 배양을 통해 검사한 결과와 진단용 스피너를 이용한 세균 검출 결과.
진단용 스피너 진단 결과가 표준 배양 검사와 일치할 뿐 아니라 배양이 되지 않았던 세균까지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 오지에서는 증상이 있는 모든 환자들에(39명) 항생제를 투여하는 반면 실제 항생제가 필요한 환자는 18명에 불과해 21명 환자(54%)는 항생제를 남용했음을 나타낸다.
또 29번, 38번 환자(5%)는 의사소견은 항생제가 필요한 환자이지만, 배양에 실패했다.
(c-d) 진단용 스피너의 검사는 1시간 이내에 세균 검출 유무를 알 수 있고 환자의 항생제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
▲ 진단용 스피너 작동 방법
정 가운데 원이 회전축이다. 회전축 양 옆으로 2개의 샘플을 실험할 수 있다. 먼저 소변샘플을 넣고 스피너를 회전시키면 필터(양 옆 작은 원)에 박테리아가 걸러진다. 이후 세균 검출 시약을 주입해 반응시켜 눈으로 살아 있는 세균의 양을 확인할 수 있다. 세균 검출 뒤에 항생제를 섞은 소변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해 항생제 내성검사를 진행한다.
▲ 진단용 피젯 스피너의 미세유체 구동원리와 데이터
(a) 기존의 회전형 미세유체칩은 물질이 가장자리로 몰려 유체를 처리하기 위해 더 큰 압력(원심력)이 필요했으나 진단용 스피너는 유체의 압력 및 저항성을 맞추어 유체 처리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b) 기존 방식과 진단용 스피너의 유체 처리 후 필터 비교 사진
(c-e) 진단용 스피너의 유체 처리에는 기존 미세유체칩보다 매우 적은 원심력으로 유체처리가 가능하므로 1~2번의 작동만으로 1mL 의 유체를 처리할 수 있다.
▲ 진단용 스피너를 이용한 항생제 내성 실험
30명 환자에서 얻은 세균 샘플의 항생제 내성 실험. 육안으로 내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A) 소변 시료에 항생제를 20분 간 섞은 뒤 45분 동안 결과물에서 세균을 검출했다. 이 때 진단 스피너 한 쪽에는 대조군으로 항생제를 넣지 않은 샘플을 실험했다. 색이 진할수록 세균 수가 많고 내성을 가진 세균은 항생제에 죽지 않아 진한 색을 띤다. 내성이 없어 항생제에 세균이 죽으면 시료는 밝은 색을 띤다.
(B) 항생제 내성에 따른 분류. 두 종류의 항생제 CIP(ciprofloxacin)와 CZ(cefazolin)를 양을 다르게 해 각각 시도했다. ‘pos‘는 박테리아가 있는 대조군, ’neg‘는 박테리아가 없는 대조군이다. 두 종류 항생제 모두에 내성이 없는 경우를 S/S, 한 종류에만 내성이 있는 경우를 S/R과 R/S로 분류했다. 둘 다 내성이 있는 경우는 R/R로, 마지막 줄에 (대조군을 제외하고) 모든 항생제 노출에서 세균이 살아있는 것(진한 색)을 볼 수 있다.
(C) 30명 환자의 색 농도 분포. 빨간 점이 CIP, 초록 점이 CZ를 가리킨다. 내성 여부에 따라 색상이 뚜렷이 구분된다.

손가락으로 장난감을 돌리듯 간단히 세균 감염을 진단할 수 있는 기구가 개발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첨단연성물질 연구단(단장 스티브 그래닉) 조윤경 그룹리더(UNIST 생명과학부 교수) 연구진은 장난감 피젯 스피너를 닮은 수동 진단 기구를 발명했다.

수 일이 걸리던 감염성 질환 진단을 1시간 이내로 단축하면서 100% 진단 정확도를 보여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오지에서 항생제 오남용을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세균성 감염질환은 복통, 유산, 뇌졸중 등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감염성 질환 진단은 보통 하루 이상 걸리는 배양 검사가 필요한데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는 큰 병원에서만 가능해 검사에 1~7일이 소요된다. 때문에 작은 의원에서는 증상만으로 항생제를 처방하는데 맞지 않는 항생제를 사용하면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지면서 점점 더 높은 단계의 항생제가 필요해진다. 1단계 항생제는 500원에 불과하지만 4단계 항생제는 100만원에 달하며 종국에는 항생제로 해결할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까지 출현할 수 있다.

진단 시간 단축을 위해 과학자들은 칩 위의 실험실(lab on a chip)로 불리는 미세유체칩 연구를 여럿 내놨다. 마이크로미터 규모 구조물에 시료를 흘려 여러 실험을 한 번에 처리하는 원리다. 그러나 미세유체칩 구동에는 일반적으로 칩 내의 시료를 이동시키기 위한 복잡한 펌프나 회전장치 등 제어 장비가 필요해 개발도상국이나 오지에서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연구진은 적은 힘으로도 빠르게 오랫동안 회전하는 피젯 스피너 장난감에 착안해 손으로 돌리는 미세유체칩을 구상했다. 또 구현을 위해 교신저자가 2014년 개발한 FAST(fluid-assisted separation technology) 기술을 응용했다.

일반 미세유체칩은 시료를 거르는 필터 아래쪽에 공기가 있어 시료를 통과시키는 데 높은 압력이 필요한 반면 필터 아래쪽에 물을 채우는 FAST 기술의 경우 상대적으로 작은 압력으로 시료를 통과시킬 수 있어 손힘으로도 충분하다.

연구진은 회전으로 병원균을 농축한 다음 세균 분석과 항생제 내성 테스트를 순차적으로 수행하도록 기구를 설계했다. 진단용 스피너에 소변 1 ml를 넣고 1~2회 돌리면 필터 위에 병원균이 100 배 이상 농축된다. 이 필터 위에 시약을 넣고 기다리면 살아 있는 세균의 농도를 색깔에 따라 육안으로도 판별할 수 있고 추가로 세균의 종류도 알아낼 수 있다.

세균 검출 후에는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진단용 스피너에 항생제와 섞은 소변을 넣고 농축시킨 뒤 세균이 살아 있는지 여부를 시약 반응으로 확인한다. 이 과정은 농축에 5분, 반응에 각각 45분이 걸려 2시간 내에 감염과 내성 여부를 모두 진단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인도 티루치라팔리 시립 병원에서 자원자 39명을 대상으로 병원의 배양 검사와 진단 스피너 검사를 각각 진행해 세균성 질환을 진단했다. 실험 결과 진단스피너로 검사 결과를 1시간 이내에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배양에 실패한 경우까지 정확히 진단해 냈다. 이에 따라 현지의 일반적인 처방으로는 59%에 달했을 항생제 오남용 비율을 0%로 줄일 수 있음을 보였다.

연구를 이끈 조윤경 그룹리더는 “이번 연구는 미세유체칩 내 유체 흐름에 대한 기초연구를 토대로 새로운 미세유체칩 구동법을 개발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항생제 내성검사는 고난도인데다 현대적인 실험실에서만 가능했는데 이번 연구로 빠르고 정확한 세균 검출이 가능해져 오지에서 의료 수준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 제1저자인 아이작 마이클 연구위원은 “진단용 스피너는 개당 600원으로 매우 저렴하고 비전문가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 IF 17.149)誌에 5월 19일 0시(한국시간) 논문명 ‘A fidget spinner for the point-of-care diagnosis of urinary-tract infection’, Issac Michael, Dongyoung Kim, Oleksandra Gulenko, Sumit Kumar, Saravana Kumar, Jothi Clara, Dong-Yeob Ki, Juhee Park, Hyun Yong Jeong, Taek Soo Kim, Sunghoon Kwon, and Yoon-Kyoung Cho 등으로 게재됐다.

저작권자 © 닥터더블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