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많은 의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패션쇼 치루고 싶어요”

지난달 26일, 일요일 저녁임에도 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볼룸은 열기로 가득했다.
 
무대 위에선 의협 100주년기념위원회가 주최한 국민의학박물관 건립 기금 모금 패션쇼가 한창이었다. 750석 라운드테이블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모델들이 익숙하지 않은 스텝으로 무대를 오갈 때마다 폭소를 터뜨리거나 때론 탄성을 내지르며 무대 위와 호흡을 같이 했다.
알고 보면 이날의 관중들은 무대 위의 모델들이 보통 모델이 아니듯 보통 관중은 아니었다. 이들은 적어도 15만원짜리 저녁식사를 구매함으로써 국민의학박물관에 기금을 보탠 성실한 기부자들이다.

모델들도 마찬가지다. 의협 100주년기념위원회 여성분과위원 등 74명의 모델들은 이날 선보인,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을 이영희 선생의 작품을 자비로 구입한데다 별도의 기부금까지 쾌척한 통 큰 기부자들이다. 이 자리가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을 가장 분명한 이유가 된다.

외부 언론들도 이번 행사를 아주 흐뭇하게 보아주었다. 연예인이나 전문 모델이 아닌 의사들로 전통의상 패션쇼를 치루고, 또 그 안에 스토리를 가미해 재미를 찾은 건 분명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행사문화라는 것.

그러므로 100주년기념위원회 집행위원이자 여성분과위원인 이명희 원장은 행사를 끝낸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조직에도 없는 사실상의 ‘총무’ 역할을 수행해냈다. 모델들을 챙기는 일에서부터 관중동원, 그리고 업체들과의 스폰서 협의에까지 이 원장은 즐겨 시간과 발품을 판 것이다.

“치루고 나니 어떠세요. 시원하신가요?”
“홀가분하죠. 잘 끝났다고 봐요. 반응이 좋아서 기분도 좋고요.”
“지난해의 패션쇼와 이번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난해 1회 패션쇼는 아시다시피 여자의사회가 주최했었는데. 이번엔 100주년기념위원회가 주관이 됐죠. 내용에서도 쇼에 스토리를 가미했어요. ‘어우동’이나 ‘가족나들이’같은 테마를 입힌거죠. 다들 흥겹게 준비했고, 재미도 있었어요.”
“이번 행사는 언제부터 준비를 하신거죠?”
 
◆ 국민들에게 보여줄 박물관 꼭 필요해
 
“옷을 맞춘 게 1월이었어요. 그 때는 3월4일로 날짜를 잡아뒀었으니까요. 근데 그만 로비사태가 불거지는 바람에 연기를 했잖아요. 장소도 미리 잡아뒀었는데, 다행히 호텔 측에서 패널티를 물지 않고 연기를 해줬어요. 이영희 선생과는 김화숙 위원장이 접촉을 하셨고, 모델 선정에선 본인의사를 존중했어요. 왜냐하면 시간도 시간이지만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은 터라...”

이명희 원장은 그래도 여성분과위원들은 거의 참여했고, 집행위원들도 앞장서 100만원씩의 기부금을 쾌척했다고 귀뜸 했다. 

“국민의학박물관 건립기금 모금 패션쇼는 어떻게 나온 얘기지요?”
“처음엔 회관건립을 생각했었어요. 그러다 100주년의 한국 의료계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걸 하나도 갖고 있질 못하다는데 생각이 미친거죠.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박물관이 꼭 필요해진 겁니다. 아직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번 행사의 수익금이 8천만원 정도는 될 것 같은데, 이 돈이 의학박물관 건립에 초석이 되었으면 해요.”

“준비 과정에선 어떤 일이 가장 힘들었나요?”
“저는 전화를 많이 했어요. 힘이야 왜 안 들었겠어요. 성분명처방 투쟁을 앞두고는, 옷을 맞추신 분들 중에 모델을 안 서신 분들도 계세요. 시국이 이런데 패션쇼가 무슨 말이냐는 거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투쟁은 투쟁이고 패션쇼는 또 패션쇼지요. 한쪽으로만 치우쳐선 안 됩니다. 길거리로만 나가려 들어선 안 되며, 패션쇼 같은 것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줄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각 직역단체가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의사들이 하나로 마음을 합칠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하겠어요.”

이 원장은 이번 행사를 하면서 모든 의사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이벤트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됐다. 의료법이나 수가를 초월해서 의협과 병협과, 대학과 개원가가 하나 될 수 있는 행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 될지는 아직 더 연구해 봐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즈음에 전체 의사들을 아우를 수 있는 뭔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대학과 대학 간의 앙금이 많아요. 연세대와 서울대가 제중원을 두고 벌이는 다툼 같은 건 참 작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걸 초월해서 가령, 이번에 100주년기념위원회가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MBC가 독립운동 의사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냈잖아요? 그런 활동들은 얼마나 좋습니까. 국민들이 의사들을 보는 시각은 그런 노력들에 의해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거거든요. 어느 대학이 한국의료 100년에 뿌리를 대는지는 사실 국민들에겐 그리 중요하지가 않죠.” 
 
◆ 회무로 많은 사람들 알게 돼 좋아
 
“내년이 진짜인데요. 패션쇼를 또 맡으신다면 내년에는 어떻게 치루고 싶으세요?”
“두 차례 행사를 치루면서 사실 좀 반성이 되는 부분도 있어요. 전체 의사들 중 극히 소수만의 이벤트가 되거든요. 다음에 한다면 좀 더 많은 의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로 치르고 싶어요. 가령 패션쇼를 해도 화려한 드레스 보다 가운만을 갖고 나오면 전체 의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이번엔 좀 다른 문제를 여쭤봤다.
“약사는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데요? 성분명처방으로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아예 없어진다면 그런 논리가 맞겠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약국으로 넘어가면 지금보다 더 심해질 거란 염려가 벌써 나오기 시작하잖아요. 그런데 언론들이 나서서 마치 리베이트 때문에 의사들이 성분명처방에 반대한다는 뉘앙스를 국민들에게 주는 건 공평치가 못합니다. 그 문제는 그 문제로서 다뤄야지 성분명처방에 끼워 붙일 사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회무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일단 발들이면 빼기가 어려운 게 회무인데요.”
“서울시개원내과의사회 학술이사를 을 맡으면서 자꾸 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의협 100주년 일 이외에 노인의학회 부회장, 개원내과의사회 학술이사, 위내시경학회 총무이사, 내과학회 학술이사,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회 기획분과위원을 맡고 있죠. 시간은 많이 빼앗기지만 몰랐던 많은 사람들을 회무를 통해 알게 되는데, 그 게 큰 자산이에요. 애들이 유학을 가지 않고 옆에 붙어 있었더라면 아마 다른 여자의사들처럼 저도 회무는 엄두를 못 냈을 거예요.”

“스스로 본인의 성격을 평가한다면?”
“글쎄요. 외향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집행부에선 카리스마가 있다는 의미에서 가끔씩 여자 장동익이란 얘기를 들었거든요.”

이명희 원장은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라’는 경귀를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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