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섭 이학박사
㈜아이피에스바이오 연구소장 / ㈔대한파킨슨병협회 고문

 

2001년 어느 여름날 논산훈련소. 훈련을 끝내고 식사를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식당으로 가는 길, 어느 훈련병은 앞에서 걷고 있던 동기가 걸을 때마다 왼쪽 팔이 오른쪽 팔보다 좀더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동기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이야기를 들은 동기는 자신이 걸을 때마다 두 팔의 흔들리는 각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게 됐지만 개의치 않았고, 전문연구요원이었던 그 동기 훈련병은 앞으로 일어날 변화를 전혀 모른 채 4주의 훈련 기간을 잘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개월 후 그는 걸음을 걸을 때 왼쪽 다리에 조금씩 힘이 덜 들어가고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진단을 받기 위해 모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법) 촬영을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남들과 걸음걸이는 조금 다르지만 아직은 불편함이 없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다시 몇개월이 지나 다리를 이제는 조금씩 끌게 되면서 척추전문병원 신경과에서 목에서부터 척추 중심으로 MRI(자기공명영상법) 촬영을 했지만 증상에 관련된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근전도검사(EMG)를 시행했고 그 결과 운동장애가 예상된다는 의견을 종합병원 신경과 운동장애 전문의로부터 받게 된다. 그는 병원 신경과에서 지금까지 받지 않았던 행동학적 검사와 설문 검사를 통해 진단을 받게 되고, 결국 그렇게 받은 진단이 파킨슨병이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여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인정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받아들이고도 몇 개월이 지나서야 처방된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것은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생물학과 분자유전학을 전공했던 나는 파킨슨병을 연구하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 이후로 파킨슨병과 관련된 신경줄기세포와 유전체 분야를 줄곧 연구하고 있다.

그리고 유전체 분야를 연구하면서 최근 NGS 분석 기법을 통한 다양하고 정확한 바이오마커(biomarker) 발굴에 대한 연구 방법을 알게 됐다.

앞에서 파킨슨병을 진단받기까지를 자세히 설명한 이유도 파킨슨병을 진단받기까지 얼마나 어려운지를 경험했고 초기에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으며, 조기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방법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주관하는 뇌질환 연구기반 조성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파킨슨병 극복을 위한 코호트 구축사업과 치매 극복을 위한 코호트 구축 사업이 추진된다는 뉴스가 연이어 발표됐다.

이는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등의 뇌질환 코호트 중심으로 임상역학정보, 뇌영상정보(자기공명영상법(MRI), 양전자 단층촬영법(PET)), 유전체 정보, 인체 자원(혈청, 혈장, DNA), 사후 뇌조직(치매뇌은행) 등 정밀의료 연구자원을 확보해 뇌질환의 정확한 진단법, 예방관리지침 개발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사업이다.

이와 같이 특정 질병에 대한 코호트 연구를 통해 얻은 정밀의료 연구자원에 대한 통합적인 분석은 기존의 바이오마커들을 우리 나라 코호트에서 재검증하고 보다 정확하고 적절한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발굴을 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이렇게 발굴된 바이오마커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바이오마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이오마커는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DNA, RNA, 단백질, 대사물질과 같은 생물학적 분자들을 말하며, 혈액, body fluids(CSF, 땀, 뇨), 조직과 같은 것에서 얻을 수 있다. 바이오마커는 많은 과학적 분야에 이용되며 정상적인 생물처리 과정, 병원성을 일으키는 과정, 치료를 위한약리학의 과정을 측정하거나 평가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바이오마커는 목적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다.

위험 감수성 바이오마커(susceptibility risk biomarker)는 현재 임상적으로 질병이나 의학적 상태가 명백하지 않은 개인의 발병할 가능성을 나타낸다.

진단용 바이오마커(diagnostic biomarker)는 질병의 유무를 감지하거나 확인하는 데 사용되며 질병의 하위 유형도 식별할 수 있다.

모니터링 바이오마커(monitoring biomarker)는 질병의 상태와 의학적 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또는 의료 제품, 환경 인자에 대한 영향의 증거 등을 연속적으로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예후 바이오마커(prognostic biomarker)는 이미 질병이 있거나 의학적 조건에 관심이 있는 환자의 재발 또는 진행에 관련된 임상적 사건들의 가능성을 식별하는 데 사용된다.

예측 바이오마커(predictive biomarker)는 특정 의료 제품이나 환경 인자에 대한 더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 개인을 식별하는 데 사용된다.

파킨슨병의 초기 단계는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파킨슨병의 진단은 대부분 임상 증상에 의존하고 있어서 그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파킨슨병의 관리에 있어 조기 진단을 위해선 신뢰할 수 있는 진단 및 예후 바이오마커가 절대적으로 시급하다.

나에게 나타난 증상들을 살펴봤을 때 1단계(왼쪽 팔 흔드는 각도), 2단계(왼다리 힘 빠짐), 3단계(왼쪽 다리 끌림), 4단계(파킨슨병 진단)로 진행되는 순간에서 만일 신뢰할 수 있는 예후 바이오마커가 있어 초기 단계인 1단계에서 진단이 가능했다면 치료에 대한 반응을 예측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파킨슨병의 병태생리학적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뇌척수액과 혈액 속의 잠재적인 진단 바이오마커와 예후 바이오마커로는 α-시누클레인 종류들과 아밀로이드와 타우 병리 마커 그리고 미세신경섬유 경쇄 등이 있다. 특히 이들 여러 가지 바이오마커들을 조합해 함께 분석하는 것이 정확한 진단과 예후를 위해 보다 가능성이 있는 모델로 대두돼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들이 있다.

따라서 파킨슨병의 진단 및 예후 정확도를 개선하기 위해 뇌척수액 및 바이오마커를 채택하는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게 될 우리 나라 파킨슨병 코호트를 포함해 대규모 독립 코호트에서 이러한 결과물들의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조기 진단의 바이오마커 발굴을 위해선 코호트의 인체 자원을 확보할 때 동일 임상 대상에서 발병 시기별로 인체 자원을 추적해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보다 정확한 조기 진단 바이오마커의 발굴을 위해서는, 나의 증상에 빗대자면 파킨슨병을 진단받기 전 나의 증상 1단계부터 2단계, 3단계, 4단계를 거쳐 진단이 확정된 시기를 포함하는 나의 몸에서 나타나는 여러 바이오마커들의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갑자기 팔에 힘이 없어라는 말이나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천천히 변화돼 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기 전에 제대로 진단받아서 진행 과정을 늦추거나 더 나아가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바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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