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말기암 진단에 하늘은 노랗고, 다리는 후들거려 서있기가 힘들다. 시한부 인생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 막바지에 가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연명치료에 의존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연명의료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 대한 생명 연장 치료로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 수혈 등으로 삶을 연장하는 치료방식이다. 요즘은 환자 자신이 연명의료 여부를 미리 결정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런데 말기암 환자 10명 중 3명은 이런 연명의료 결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 교수팀은 국내 11개 대학병원과 국립암센터에서 말기암 환자 141명을 대상으로 연명의료에 대한 수용 의사를 2개월 간격으로 물은 결과 이같이 분석됐다고 16일 밝혔다.

연구결과를 보면 처음 조사에서 연명의료를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71명(50.4%),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70명(49.6%)이었다. 그러나 2개월 후에는 연명의료를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71명에서 48명으로 줄었으며, 수용하지 않겠다는 응답도 70명에서 46명으로 감소했다.

즉 전체 말기암 환자 141명 중 94명(66.7%)은 연명의료 수용에 대한 처음 결정을 유지했지만, 나머지 47명(33.3%)은 이런 결정을 중도에 바꾼 셈이다.

연명의료 여부에 대한 결정의 변화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 12배까지 높아졌다. 의료진은 연명의료 결정에 가족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신체기능이 좋은 환자는 연명의료로(5배), 신체기능이 좋지 않거나(10.6배) 삶의 질이 악화된 환자는(8.3배) 연명의료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바꿨다.

연구팀은 아직 의료현장에서 환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연명의료가 시행될 수가 있는 만큼 의료진은 이에 앞서 환자로부터 분명한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윤영호 교수는 “말기암 환자는 임종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다수의 조사결과가 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환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연명의료가 시행되고 있다. 의료진은 충분한 설명을 통해 환자의 분명한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결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의 주기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그는 또 “환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의료진은 사전의료계획서를 통해 환자와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를 함께 논의하는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의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기에 완화의료를 시행할 경우 말기암 환자의 생존기간과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한다는 최근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 한다” 고 강조했다.

이젠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 같은 취지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 7월15일부터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를 비롯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보다는 환자 스스로 가족과 협의하는 가운데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하여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족의 감당하기 버거운 부담을 완화하고, 무엇보다 환자가 존엄한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법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데 이번 연구결과가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의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의 자기의사결정권을 존중하고, 이를 실행해 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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