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들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 동창회의 역할

“친정같이 편안한 모임으로 가꿀래요”
 

이화의대 동창회 우경숙 회장은 얼마 전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을 찾았다. 여고 동창생인 두 사람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각자 책임 있는 자리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사 보다는 공을 주로 얘기했다. ‘제3병원 건립’과 이화의대 동창의 날 제정 문제가 주로 거론됐는데, 우 회장은 ‘대학병원들이 대형화하는 추세여서 이대의 경우 목동과 동대문 병원만으로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제 3병원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입지와 관련해서도 우 회장은 목동병원과 지리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건을 특히 강조했다.

공적 활동이란 적절한 절차와 격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 회장과 이 총장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여고동창생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들은 눌러둘 땐 눌러둬야 서로에게 예가 된다.

지난 5월 우경숙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동창회는 여러 가지 새로운 구상들을 실행에 옮길 채비로 분주해졌다. 오랜 기간 동창회의 일원으로 이사 부회장을 거치면서 생각해온 사업들을 중의에 부쳐 하나하나 승낙을 얻어내는 것이다.
지난 이사회에선 동창회의 비전을 ‘참여’ ‘화합’ ‘역동’으로 수립, 임기동안 케치프레이즈로 삼기로 했다. 참여는 한 핏줄을 타고난 형제 자매로서의 동창회를 강조한 것이고, 화합은 친정집 같이 부담 없는 동창회를, 그리고 역동은 참여와 화합으로 응집된 이화의대인의 거대한 힘을 나타낸다.

조직 강화에도 역점을 둬 지회장 회의와 동기회장 회의를 정례화 시켰고, 모교와의 유대 강화를 위해 동창의 날(Home Coming Day)을 제정, 버스투어로 학교를 둘러보고 함께 만찬을 갖는 이벤트도 갖기로 했다. 또 자랑스런 이화의대인을 발굴하는 시상제도를 제정, 60세 이상 회원들 중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기로 하고 현재 상의 명칭을 공모 중이다.    

이렇듯 일이란 하려고 들면 들수록 많아진다. 우경숙 회장은 그런 일들을 대체로 즐기는 편이다. 꼼꼼하게 체크해내고 다듬어가는 과정들을 그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소화해 낸다. 하지만 의욕만으론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동창회 예산은 어느 정도나 되죠? 결국 사업이란 재정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회원수가 3700명이나 되지만 회비를 내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4만원의 년회비 이외 ‘10년 회비’를 두고 있고 이번에 종신회비제도도 신설했어요. 동창회 예산은 현재 2억3천만원 규모인데, 사실 해야 할 일들은 이보다 훨씬 많거든요. 어쨌든 회비 걷는데 역점을 둘 작정이에요. 회비는 곧 관심이에요. 회비를 꼬박꼬박 내는 회원이 많다는 건 회가 그만큼 활성화되어 있다는 반증입니다.”

“반대로 회원들은 회비가 아니라 동창회의 역할을 물을지도 모르거든요?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하하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 생각으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라고 봐요. 어느 경우에건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이화의대 출신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들을 세심히 살피고 지원하는 거죠. 동창회가 없다면 그런 역할을 누가 하겠어요.”
 
◆ 참여 · 화합 · 역동 -우리의 비전
 
“언제부터 동창회 일에 관여 하셨죠?”

“10년 전쯤에 총무 일을 시작했을 거예요. 본래 나서는 성격이 아니어서 병원하고 집에만 매달려 지냈는데, 부천시여자의사회 설립에 관여하면서 회무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해서는 부천시산부인과의사회, 한국여자의사회, 의사협회에 동창회 일까지 보게 됐죠. 회무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하니까 자꾸 부탁이 들어오고 그래요.”

우경숙 회장은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5년을 봉직의로 일했다. 이 가운데 3년을 작은 아버지 병원에서 일을 하다 선배의 권유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천 지금의 자리에서 병원을 시작했고, 지난해 초 우경숙 산부인과에서 미즈엔미 여성의원으로 상호를 바꿔달았다. 주인을 닮은 병원은 무척 아담하고 깔끔해 보였다. 이런 느낌을 얘기하자 우 회장이 긴 설명을 덧붙였다.

“분만을 않으면서 진료영역을 넓히다 보니 상호도 바꾸게 된 건데, 그것보다는 제가 천주교 신자거든요. 근래 성당에 열심히 나가면서 신부님이 가끔씩 중절수술에 대해 얘기를 하셨어요. 그런데도 모른 척 했거든요. 산부인과로선 참 어려운 문제예요. 그러다가 지난 2월부터 중절수술을 않기로 결심하고 신부님과도 약속을 했어요. 당장 병원경영에는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해요. 미즈엔미로 간판을 바꾼 진짜 이유인 셈이기도 하고요.”

“대학 동기 분들도 가끔씩 만나세요? 몇 명이 함께 졸업하셨나요?”

“51명 일거예요 아마. 몇 몇을 제외하면 잘 못 만나요. 당시에 미국의사시험이 한창 유행이어서 동기들 중 3분지 2가 미국으로 건너갔거든요. 그리고 전 곧바로 산부인과를 전공하게 됐고요. 그 때만 해도 이화의대 산부인과라면 인기가 최고였죠.” 

“결혼은 언제 하셨는지.. 연애를 하셨어요?”

“예. 연애를 해서 전공의 시절에 결혼 했죠. 지금으로 생각하면 빠르다 싶을지 몰라도 당시엔 다 그렇게들 했어요. 개원 초기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병원 일을 보느라 정말 다른 신경은 쓸 틈이 없었어요. 손위 시누가 아이들을 봐 줬고 남편도 많이 도왔어요. 딸만 둘인데, 큰 애는 충남의대를 졸업하고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있고, 둘째는 이대 무용과를 나와 미국에서 안무 공부를 하고와선 지금은 안무 강사를 해요. 속 썩이지 않고 잘들 자라준 셈이고, 감사할 일이에요.”

자식은 부모를 배우는 법이다. 그러므로 잘 자라준 아이들은 부모 눈엔 늘 대견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우경숙 회장도 여느 여자의사들이나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바쁜 엄마로 산 시간들이 무척 아쉽다. 
 
◆ 추진 중인 제 3병원 설립에 도움 보태야
 
이제 다시 동창회를 얘기할 차례다.
“회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건가요?”

“친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어울릴 때 어울릴 수 있어야 동창이거든요. 그러자면 회의 문턱부터 낮추어야 해요. 친정집에 놀러오듯 편한 마음으로 오갈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동창회의 할 일이겠죠.”

“올 해 역점사업에 대해 좀 들려주시죠?”

“홈 페이지를 활성화시켜야 해요. 동문들이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동창회가 바로 홈페이지거든요. 여기에 임원진을 위한 방도 따로 둬 동창회의 기본 회무를 모두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그러자면 기능도 보강하고 콘텐츠도 다양하게 개발해야겠죠. 또 하나 제 3병원을 학교에서 추진 중인데, 동창회에서 도움을 줘야합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총장님도 의과대학이 커져야 이대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하시더군요. 제 3병원을 전제로 하신 말씀일 거예요.”

우경숙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09년 5월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동문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에 필요한 만큼의 노력을 투여할 작정이다. ‘후배들에게 한 말씀’을 부탁하자 우 회장은 ‘잘들 하고 있다’면서도 ‘가정과 일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입장들이어서 다른 생각할 겨들이 없겠지만 그래도 틈을 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자세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으론 우 회장은 건강하게 진료하고 봉사하면서 쫓기지 않고 마음으로 생활을 즐기고 싶은 욕심을 가졌다. 그런 바램은 어느 순간 그가 꿈꾸는 전원생활로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닥터더블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