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되겠다고 매일 매일 다짐해요”
  
아직 졸업생이 나오기도 전인 의학전문대학원을 두고 실패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크다. 하지만 의전원은 여전히 학생들을 뽑고, 그 속의 학생들은 열심히 의사가 될 준비들을 갖춘다. 조은아씨는 경희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3학년이다. 이미 학과수업을 마치고 요즘엔 주로 병원에서 실습 위주의 수업을 받는다. 때로 의사로 오인한 보호자들이 뭘 물어오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솔직히 두려움이 앞선다.

조은아씨는 96년 경희대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교직을 이수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암연구소에서 신약 임상시험을 위한 동물실험에 주로 참여 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임상에 대한 관심도 따라서 커졌다. 병원에서 의사들을 가까이에서 대하면서 의료라는 행위와 의료인이라는 이름에 더 가치를 매기게 됐는지도 모른다.

마침 의학전문대학원이라는 기회가 왔다. 이런 의중을 집에다 비췄을 때, 반대도 있었지만 격려도 있었다. 2004년 1월부터 준비에 들어가 8월에 MEET를 보았다.

배수아씨는 조은아씨의 경희대 생물학과 3년 후배다. 의전원에서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선후배보다는 친구에 더 가까운 관계를 새로 얻었다. 배수아씨는 ‘원래 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점에서 조은아씨와 다르지 않았다. 만족스럽지 못한 수능 점수 때문에 다른 과를 택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의전원 얘기를 들은 후부턴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준비 과정은 남들이 얘기하듯 그렇게 돈이 많이 든다거나 하진 않았다. 학원에 의존한 건 사실이지만 부족한 과목만 신청해서 들을 경우 경제적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수강료는 과목당 10~15만원 선인데, 물리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지 못한 과목만 선별해서 듣고 주로 학교도서관을 이용해 공부를 했다.
 
◆ 등록금 비싸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그만
 
대학을 졸업하고 혹은 대학원을 다니다가 다시 수험 공부에 매달린다는 일이 생각하기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전공이 생물학이어서 물리나 통계 같은 과목이 특히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조은아씨나 배수아씨나 생리적으로 공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험만 아니라면 공부 그 자체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체질들이었다.

입시 관련 정보는 주로 학원에서 얻었다. MEET 점수가 나왔을 땐 이미 합격가능 의전원을 점칠 수 있었다. 학원에서 소속 수험생들의 점수를 모두 모아 가상 입시를 치루고 이를 토대로 만든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조은아씨의 경우 경희대 의전원의 경쟁률이 5:1로 발표됐지만 ‘이 정도면 합격 하겠다’는 확신이 미리부터 있었다.

그래도 합격통지서를 받고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배수아씨는 ‘잘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좋은 의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혼자 곱씹기도 했다. 조은아씨도 감사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두 사람은 합격과 함께 홀가분하게 여행을 다녀왔다. 스스로를 정리하는 기간인 셈이다. 배수아씨는 케냐엘 다녀왔고, 조은아씨는 홍콩엘 다녀왔다. 그리곤 인터넷 카페를 통해 미리 과 친구들의 얼굴을 익혔고, 40명이 모두 모이는 전체 미팅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선배들도 나와 학교생활을 소개하기도 했다.

꿈같은 나날이었다. 하나의 도전이 있었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의 기쁨은 오래도록 샘솟듯 그렇게 솟아올랐다. 드디어 입학을 했다. 의학전문대학원생이 된 것이다. 연령도 제각각이었다. 84년생에서부터 81, 82년생이 평균이고 한의사를 하다 온 분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생화학 약리학 같은 낯선 과목들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공부를 많이 할 거라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과제물들이 늘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다 보니 멀쩡하게 서울에다 집과 가족을 두고서도 모두들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얻어 생활한다. 학교와 숙소를 오가며, 그렇게 만 시간을 사용할 뿐 이들에겐 옆을 둘러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밖에서는 의전원의 비싼 등록금에 대해서 말이 많은가 보았다. 그럴 수는 있겠다 싶긴 해도 의사가 되기로 하고 기를 써서 들어온 의전원에서 등록금을 문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장학금도 탈 수 있다. 40명 중에서 성적장학금이 8명, 모범장학금 수혜자가 15명이다.
 
◆ 지금은 과도기, 곧 제 자리 찾을 것
 
1학년때 기초과목을 공부하고 2학년 때 임상강의를 듣는다. 3학년 들어서 부터 실습 위주의 수업이다. 이 시기에 환자에 대한 생각을 특히 많이 하게 된다. 나중에 환자 한 명 한 명의 특성에 맞는 좋은 진료를 해야겠다는 생각, 환자를 내 친척처럼 여기자는 생각. 실습은 각과를 조별로 나눠 돌아가면서 공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아침마다 출근하듯이 병원 문을 밀고 들어서야 한다.

오후에는 강의를 들으며 모형으로 실습을 한다. 실기시험을 치고, 환자케이스리포터가 과제로 주어진다. 수업은 의과대학과 의전원이 함께 한다. 소속이 다르고 연령대가 다름에도 양 집단은 비교적 잘 협조해서 수업분위기를 밝게 이끌어간다.

“대학원생과 학부생이 같은 강의를 들으며 함께 공부한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커리큘럼이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전에는 수업이 똑 같았는데, 올해부터 새로운 시도들이 자꾸 생겨요. 의전원으로 완전히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라고 보면 돼요.” 배수아씨가 적극적으로 과도기적 단계여서 그런 거라고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조은아씨도 지금은 그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기만 하단다. 여성의학을 배우면서 특히 흥미를 느꼈다. 여자가 3분의 2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동급생들의 전공은 무척 다양하다.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 의학을 접목시켜 더 큰 공부를 하고 싶어들 한다.

“그래도 같은 공부를 하면서 의대생들 보다 학비를 배 가까이 더 내야 한다는 건 불합리하지 않나요?” 기자가 한번 더 물고 늘어졌다.

“처음에는 의대생들에 비해 비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석사 학위를 받게 되고 또 커리큘럼도 달라지고 있어요. 의대생들보다 더 비싸니까, 대학원 과정이니까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여기서 로드를 더 주면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아요.”

제발 그냥 놔둬 달라는 표정으로 배수아씨가 덧붙인다. “원룸에 살면서 새끼 밥을 사서 먹어요. 집에는 주말에나 잠깐 다녀올 수 있고, 그나마 시험 때는 공부 땜에 거의 방에 틀어박혀 지낸다고요.”
조은아씨도 ‘돌아 돌아서 오게 된 학교인데, 학비 문제에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 보다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뭐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란다.

그는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환자들에게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의사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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