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병을 오래 앓다 보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병원에 입원해서 이리저리 치료받아 보면서 초기에는 희망도 가져보지만 이 처방, 저 처방 시도해 봐도 차도가 없으면 그 절망감은 심연처럼 깊어진다.

갈수록 고통은 커지는데 체력은 고갈되고 마음마저 피폐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막다른 길을 염두에 두게 된다. 시간과 함께 점점 야위어 가는 자신, 그리고 병문안 오는 가족과 친지들의 지친 눈길, 의료진들의 알게 모르게 변화하는 태도 등에서 자포자기의 허탈 속에 빠져든다. 그래서 만성질환자는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증세가 지속돼 오랜 기간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이 만성질환이다. 이런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자살위험이 높고 질환의 종류에 따라 그 위험도가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관리정책학과 박기호 교수, 국립암센터 계수연 박사 연구팀은 제5차 국민건강영양조사(2010년~2012년)의 자료 중 19세 이상 1만9599명을 대상으로 만성질환자의 자살생각과 자살시도 위험에 대해 분석한 결과를 16일 발표했다.

이 결과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은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자살 생각이나 자살 시도가 일반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해 본 비율은 만성질환 환자가 일반인에 비해 1.16배 많았다. 두 가지 이상의 질환을 가진 경우는 1.2배로 높아졌다. 질환별로 보면 골관절염 환자는 1.3배, 뇌졸중 환자의 경우 1.8배나 높았다.

실제로 자살을 행동에 옮기는 자살시도의 위험은 앓고 있는 질환에 따라 골관절염 2.1배, 암은 3.3배, 협심증은 3.9배, 신부전은 4.9배 , 폐결핵 12.5배 순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주도한 박기호 교수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은 삶을 지속하려는 의지 자체를 흔들 수 있으며 질병의 종류에 따라 그 심각성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도 자신의 일부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병도 잘 사귀면 더없는 친구다’라는 말도 있다.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병이 아니라면 차라리 자신의 일부로 잘 보듬고, 잘 사귀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정한 자아가 보일 것이고, 자신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한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병을 통해 세상과 주위에 대해 겸손해 질 수 있는 보다 여백이 있는 인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성질환이 자기를 구축(驅逐)하는 마(魔)가 아니라 자기를 구해주는 은총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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