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를 마치 색종이 오리듯 이리저리 잘라서 교정하는 가위(효소)가 있다고 한다. 인간을 숙주 삼아 자신의 정체성을 자손만대에 이어지게 하는 유전자를 사람의 손으로 조작한다는 얘기다. 인간의 개성은 유전자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생후 환경과 교육 등 변수가 따르지만 근인(根因)은 유전자란 점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다.

유전자에 의해 규정되는 인간이 이제 유전자를 편집(가위질)함으로써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예뻐지고 싶어 하고 영리해지길 욕망하는 인간을 위해 ‘맞춤형’ 이상형 인간이 인간에 의해 창조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인간 창조에 인간의 의지가 반영되게 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는 동식물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부위를 자르는데 사용하는 인공 효소다. 이는 30억쌍이란 어마어마한 숫자로 구성된 DNA 염기서열 가운데 병변이 생기는 잘못된 부분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유전체 편집(Genome Editing) 기술을 말한다.

유전자 가위는 손상된 DNA를 잘라내고 정상 DNA로 갈아 끼우는 짜깁기 기술을 말한다. 1,2,3세대의 유전자 가위가 존재하며 최근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가 개발되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은 크리스퍼라는 RNA가 표적 유전자를 찾아가 '카스9'이라는 효소를 이용하여 DNA염기서열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유전체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 연구팀이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OHSU) 미탈리포프 교수 연구팀 등과 함께 인간배아에서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최근 밝혔다.

연구진은 인간배아(수정이 된 난자) 유전자 교정을 통해,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 확률을 자연상태의 50%에서 72.4%로 높여 유전자 가위로 유전병을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비후성 심근증은 선천적으로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심장질환으로, 인구 500명 중 1명의 비율로 발생한다고 한다. 심부전 증상이 나타나며 젊은 나이에 돌연사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번 연구에서 김진수 단장 연구팀은 배아 실험에 사용할 유전자 가위(크리스퍼 Cas9)를 제작해 제공하고, 실험 후 DNA 분석을 통해 유전자 가위가 표적 이탈 효과 없이 제대로 작동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다만, 국내 법률상 제한이 있어 인간배아에 유전자 가위를 도입해 유전자를 교정하는 실험은 미국 OHSU 연구팀이 수행했다.

이번 연구는 유전자 교정의 성공률을 높였다는 데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에는 수정 후 유전자 가위를 주입해서, 같은 배아에 유전자가 교정되지 않은 세포가 섞여 있는 모자이크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정자와 유전자 가위를 동시에 난자에 주입해서 모자이크 현상을 극복함으로써, 유전자 교정의 성공률을 높였다는 전언이다.

유전자 가위에 대한 생명윤리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비후성 심근증과 같은 선천성 질환에 대한 인간의 치료 손길이 누대에 걸쳐 천형으로 여겨진 악성 유전 질환에 대한 종언의 서광으로 다가오길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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