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이 제주도로부터 ‘조건부 개설허가’를 받았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2월 5일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는 녹지국제병원을 ‘조건부 개설허가’했다고 밝혔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과로 한정했으며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도 적용되지 않으므로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고도 밝혔다.

제주도가 보도자료를 통해 ‘조건부 개설허가’를 내 준 이유로 밝힌 것은 경제 살리기, 관광산업의 재도약,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외국의료기관과 관련해 우려가 제기돼 온 공공의료체계의 근간을 최대한 유지·보존하는 것 등이었다. 그리고 지역경제 문제 외에도 ‘조건부 개설허가’의 구체적인 사유로 한중 외교문제 비화 우려, 행정신뢰도 추락,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들도 거론했다.

그러나 제주도가 얘기하는 건강보험 등 국내 공공의료체계에는 영향이 없다거나 거액의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이유 등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가 신청 주체인 녹지제주헬스케어 유한회사가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금지 조항에 항의하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제주도도 원희룡 지사의 ‘조건부 허가’ 발표가 있은 직후 녹지제주헬스케어 유한회사로부터 진료 대상을 외국인 의료 관광객으로 한정한 것에 대한 항의와 법적 대응 의사를 담은 공문을 받았다고 6일 밝혔다.

현행 의료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고, 응급환자를 거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다. 녹지병원이 이런 이유로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해도 제재할 방법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 보인다.

‘조건부 개설허가’가 일방의 주장으로만 끝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편,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6일 제주도청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만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 회장은 “내국인 진료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무엇보다 건강보험제도의 내실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협만이 반대 의견을 밝힌 것은 아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나 의료연대본부, 민주노총 제주본부 등 여러 시민단체들도 영리병원의 ‘조건부 개설허가’에 대해 반발하고 원희룡 제주지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영리병원의 허가를 찬성하는 입장도 분명히 있다. 의료관광이 확대되고 일자리가 늘어나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주도가 발표한 투자개방형(영리) 병원의 조건부 개원 허가를 지지한다”면서, “이번 제주도의 결정은 한·중 외교문제에 대한 우려 및 감소세로 돌아선 제주 관광산업의 재도약 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에는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고려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은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 중 하나다.

그리고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조건부 개설허가’는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모든 국민이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공공성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큰 댐이라도 작은 균열로 무너질 수 있다. 영리병원이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체제에 끼칠 영향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다.

그러나 조건부일지라도 이미 허가는 났다. 이제는 단순히 눈 앞의 이익만을 위해 찬성하는 것은 물론 무작정 반대만을 외쳐서도 안 될 일이다. 이후 보건복지부와 제주도는 개설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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