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불만 진단] 정부 ‘저수가 정책’···병원 근로자 ‘희생’ 요구

정부의 저수가 정책으로 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장기간 유독물질에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의료기관들이 앞다퉈 ‘JCI국제인증’을 획득했다는 장밋빛 발표와 달리 정작 종사자들의 안전은 방치하고 있다.
 
국내 의료기관 시설에서 유독물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 중 한 곳이 병리과이다. 병리과는 환자의 생검이나 수술한 조직, 박리 및 흡인세포, 부검 등을 통해서 얻은 검체를 이용해 신속·정확하게 병리 진단을 제공함으로써 임상각과의 치료방향을 결정하는 곳이다.
 
이같이 환자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확진하는 병리과는 검사를 수행하기 위해 유독물질인 ‘포르말린(Formalin)’, ‘자일렌(xylene)’ 등을 사용하고 있다.
 
암을 확진하는 곳에서 발암물질을 다루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유독물질로 지정된 이 물질들에 병리과 종사자인 임상병리사들이 무방비로 장기간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일렌’은 사업장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학물질이다.
 
국가가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는 이 유독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면 눈·코 자극, 만성 두통, 흉부통, 뇌파 이상, 호흡 곤란, 발열, 백혈구수 감소, 폐기능 저하, 노동력 저하, 신체장애 및 정신장애 등을 일으킨다.
 
지난해 서울시 신청사 내 시민의 공간인 에코프라자에서 에틸벤젠·자일렌·톨루엔 등 세 종류의 유해 화학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문제가 된 바 있다.
 
유독물질인 ‘자일렌’은 병리과에서 가장 기본 검사인 H&E 염색에 필요한 물질로 임상병리사에게 필수 불가결한 시약이다.
 
‘자일렌’의 유독성으로부터 종사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글로벌진단기업인 ‘로슈진단’이 지난 2010년말 일체형 장비 ‘심포니(SYMPHONY)’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같은 일체형 장비는 고가이면서 유지비가 많이 드는 것이 흠이다. 수가인상 없이 의료기관이 교체비용과 유지비를 감당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수가를 인상하고 의료기관이 교체비용과 유지비를 부담한다면 종사자들이 유독물질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정부는 의료기관에 부담을 전부 떠 넘기고 있다.
 
심지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 2010년 병리과 수가를 15.6% 낮춰 그동안 조기 암진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같은 정부의 저수가 정책에 병리과 전문의들이 병리조직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가 인상을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정부로부터 묵살당했다.
 
현재 이 장비는 일체형으로 유독물질인 자일렌을 쓰지 않아 종사자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최적합한 제품이다.
 
국내에서 현재 이 장비는 연세대 세브란스 1대, 삼성서울병원 3대만 있을뿐이다. 미국에서는 100여개 병원이 ‘심포니’를 사용하고 있다.
 
저수가로 검사를 하면 할수록 적자인 병리과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병리과는 수익성이 낮아 전공의들에게 기피 전공으로 꼽힌다. 어떤 병원은 병리과 전문의가 없는 곳도 있다”며, “정부가 저수가 정책을 지속한다면 암진단을 확진하는데 꼭 필요한 병리과 전문의가 부족한 상황에 닥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수가 정책이 지속된다면 전문의 부족에 의한 의료사고와 투자 부족으로 종사자들의 건강을 위협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결국 환자에게 모든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다”고 수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독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현장에서 유독물질을 다룰때 안전기준을 적용해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종사자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저수가로 종사자들이 유독물질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수가등재부 이경선 담당자는 “의료계 현장에서 종사자들이 유독물질에 노출되고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오면 관련 학회가 복지부나 심평원에 건의할 수 있다”며, “유독물질을 대신할 물질이 어떤 것이 있고 이 물질을 사용하려면 수가를 어느 정도 선에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 관련 자료를 첨부해 건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학병리학회가 유독물질 사용 현황과 대체할 물질을 사용할 경우의 비용을 산출해 심평원에 건의하면 병리과의 저수가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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